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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화 연산군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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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들어서니 여행안내도가 보인다.

 

입구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임을 알려주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동네 주민들이 오시는지 운동기구가 있고 텐트를 치고 가족끼리와서 노시는분들도 있고,

 

 

코스모스길을 따라 올라가니

 

황금 빛 들판이 보이고

 

저 멀리

 

간판이 보인다.

 

길 모퉁이를 돌아서니

 

강아지풀이 너무 멋있다 ㅋ 밭주인은 지섬 때문에 걱정이겠지만 이렇게 많은 강아지풀 처음본다.

 

기분 좋은 것도 잠시

 

길가에 무슨 소리인데 ~~~~~  못가나 ^^;;

 

건너편을 보면서 가야되 말아야되 하고 있는데 간판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위를 보니 차들이 보이네 ~ 여기까지와서 안 볼 수도 없고 일단 가보자.

 

많이 걸어가서 차 안가져 온 것을 후회 했는데 차 세울데도 없다.

 

들어가는 길

 

저멀리 공사하는 것이 보인다.

 

저기 무덤 같은것은 고구리 조선시대 한증막이란다.

선조들의 치병과 목욕시설의 하나인 이 한증막은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황토와 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둘레가 15m, 높이는 3m이다. 

소나무로 불을 지펴 그 열기로 가열하고 일정한 온도가 되면 물을 뿌려 불을 끄고 이때 발생하는 수증기로 공기가 가습되면 입욕자는 헝겁이나 가마니를 두르고 들어가 땀을 내는 방법으로 탕욕을 하였다.

교동 한증막은 이 곳뿐만 아니라 수정산과 봉소리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있었다.

이 곳은 2008년 마을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가까이서 한 번 더 보고,

 

포크레인 작업하는것도 보고, 연산군 유배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연산군은 1476년에 태어나서 1506년까지 30년을 살다가신 분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신 분이다.

몇 년전 드라마에서 유배되어 울부짓던 연산군이 생각난다.

 

연산군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산군을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전에 아는 할머니가 아들이 둘째 부인을 맞이 할려니까 손주가 걱정이되어 본처하고 다시 재 결합을 했으면 하면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어린아들을 키울 수 없어 재혼을 했는데, 자기가 보기는 새 부인이 아들에게 너무 잘하는데 아들이 갈 수록 살이 빠지고 병약한데, 데려온 부인의 자식은 소홀히 대하는데도 살이 포동포동 쪄서 하루는 의심이되어 회사가는 척하고 집을 감시하니 역시 아들에게 잘해주는것을 보고, 이유를 몰라 잘 때 문제가 있나하면서 자지 않고 감시하니 부인이 자는데 부인 몸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나와서 부인의 자식에게만 가는 것을 보고 깜짝놀라면서 역시 자식에게는 엄마가 최고라는것을 느꼈다고 한다.

여기서 논할것은 아니지만 폭군 연산군을 보면 어쩐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렇게 밖에 못살다 가셨는지 ~~~~~

 

조성사업이 다 끝나고 나면 다시 한 번 더 와야겠다.

 

돌아 오는 길에 사람들이 "유배지 가도 되냐"고 해서 위치도 알려주고 공사하는것 보고오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어쩐지 발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변을 어설렁 거려보기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연산군의 행적을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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